합기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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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합기도(合氣道)의 탄생

 

 다이또류 야와라(대동류유술)을 전수 받은 최용술께서 1945년 조국의 해방과 더불어 대구에 정착하시면서 농업에 종사하시다가 한국전쟁 후 1952년 서동진의 자택에서 그의 자손인 서복섭을 개인지도로 사사 하셨고 한국전쟁 이후 1953년 처음으로 다이또류야와라 도장을 자택에서 개관하시고 일반에게 사사하셨다.

당시 많은 제자 중에서 1959년 지한제가 서울에 상경하여 야와라(유술)도장을 개설하여 지도하던 중 1961년에 합기도성무관으로 개명하고 또한 대구에서 김모가 1961년 에 서울에 상경하여 합기도신무관을 개관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모레이 우에시바 의 아이끼도(合氣道)가 일반에 보급되면서 1961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본 화랑도 도주이신 이주방형제분의 화랑도(1960년에 창시 1961년 화랑도와 합기도로 개명)와 김모 (1961년야와라를 합기도신무관 개명), 지한제 (1959년 야와라 도장에서 1961년 합기도 성무관으로 개명) 이 세 도장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합기도"라 개명 창시하였다.  

대한민국 최초로 탄생된 무술단체 

1962년 겨울에 무술단체로서는 최초로 국술회(한국무술협회-韓國武術協會)를 이주방선생의 형제께서 창설하시고 당시 창설 맴버로는 이주방, 이주상, (화랑도 창시자-서울)김모(유술사범-서울), 서인혁(유술과십팔기사범- 대구) ,이모(합기도사범-서울), 김모(유술사범-대구)이었다. 서울 종로5가의 이주방 선생의 화랑도 총본부에 한국무술협회(국술회)사무실을 두고 당시 서인혁, 이모, 김모 는 부산으로 내려가 처음으로 그들의 도장을 개관하였다.

당시 한국무술협회 산하 도장으로는 이주방 형제의 종로5가의 총본부, 김모의 국술회 충정로도장 (1962년에 개관하고 1966년에 국술회를 나가 국술관합기도로 개명하였다가 1972에 패관하고 카나다로 이주), 서인혁의 국술회부산도장 (1962년에 개관하고 1965년에 국술회를 나가 국술원합기도라 개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민 현재 택사스 휴스톤에서 국술원도장을 운영) 이 세 도장이 처음 무슬 단체인 국술회(한국무술회의 약자)창립멤버 였었다.

 

1945년(해방후)에서 1963년 당시 서울의 무도관 현황 

1963년 당시 전체 서울의 무도 도장으로는 유도의 유도대학교와 유도 중앙도장이 있었으며 공수도의 송무관, 청도관, 지도관, 창무관, 한무관 당수도의 무덕관과 군대의 태권도 오도관이 있었으며 이주방형제분의 국술회 합기도와 화랑도, 김모의 국술회합기도(1962년에 시작하여1966년에 합기도 국술관으로 개명 1972에 패관), 지한제의 합기도 성무관(1961년에 시작하여 1968 에 패관), 김모의 합기도 신무관(1961에 시작하여 1970년에 패관), 원모의 합기도 무술관(1963에 시작하여 1975에 패관), 김모의 성무관중부도장(1963년에 시작하여 1967에패관), 이모와 차모의 광무관 합기도 (1964에 시작하여 1967에 패관)가 서울에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 최초의 합기도 창설자들 중 모든 이 들이 무도의 길을 떠났으며 현재까지 무도에 종사하시는 분은 오직 화랑도의 이주방선생과 신무합기도의 지한제선생 뿐이다.  

기도(氣道) 와 대한기도회 (大韓 氣道會)의 탄생 

 1963년 대구에서 서복섭이 최용술 선생을 모시고 서울에 와서 김모(최용술선생의 야와라 제자로서 한풀 사나희도장 1963년 서울 을지로 2가에 개관) 도장에서 모든 야와라(유술) 최 고단 관장들의 모임을 가졌다. 당시 합기도는 이름 자체가 일본의 아이끼도(合氣道)를 1958년 대구에서 최용술선생의 제자인 강모가 자신의도장에 처음으로 합기도라 하였다가 최용술선생이 도장을 폐관 시켰고 이후 1961년 서울의 이주방, 지한제, 김모가 처음으로 야와라를 우리말의 발음으로 바꾸어서 합기도라 탄생시켰으나(당시 일본에대한 적개심으로 모든 일본어 를 쓰지않게되었으므로 당시일본의 아이끼도를 우리말로 바꾸게되었음) 합기도는 우리의 고유무도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회의
에서 최용술, 서복섭, 이주방, 이주상, 김모, 지한제, 원모, 김모 등 당시의 유술의 최고단자들이 모였으며 (당시 신무관의 김모는 군복무 중이었고 서인혁은 부산에 거주) 이 회의에서 "합기도(合氣道) "의 합자(合字)를 빼고 "기도(氣道)" 라고 무도 이름을 변경하게 되었다.  그후 대구의 김두영, 서복섭이 대한 기도회 (大韓 氣道會)를 정부에 등록하였으며 이것이 대한민국 무술단체로서 한국무술협회 다음으로 두 번째의 무술단체였다.  허나 모든 각 관(館)의 본부도장은 서울에 있었고 기도회 는 사무실이 지방인 대구에 있었으므로 거리관계로 모든 관(館)의 대표들이 입회를 하지 않았으며 대한기도회는 이름뿐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후 80년 후반기에 합기도 국술원의 서인혁이 기도회를 접수하고 그의 동생인 서인선 에게 회장직을 주었다.

한국무술협회의 변경

이후 1965년 부산의 서인혁이 국술회에서 국술원합기도 (처음은 國術園이라 하다가 그 후에國術院)로 명칭을 변경하고 협회를 이탈하여 독자적으로 국술원합기도를 운영하였으며 1966년 한국무술협회는 본 화랑도 창시자이신 이주방 형제분의 국술회와 김모의 합기도국술관과 서인혁의 합기도국술원으로 변하였다.

 

서울의 한국무술협회 총 본부에서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매년 서울의 장충체육관에서 전국시범경기와 경연대회를 개최하였으며 1966년 대한민국 박정희 전 대통령이 텔레비젼에 중개된 한국무술회 전국시범 대회를 보고 1965년 공수도, 당수도, 태권도를 하나로 통합시켜 "대한태권도협회"로 만들고 대한체육회산하 스포츠 단체로 가입시킨것과 같이 무도역시 각 무도를 하나로 통합하기를 권고하였다. 이에 당시 청와대 경호사범으로 근무하던 합기도 성무관의 지한제 관장이 본 도의 이주방 태사를 방문하여 두 사람이 무도의 통합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당시 무도 통합을 위하여 1967년 한국 무도의 처음으로 창설된 무술단체인 국술회(國術會)를 이주방선생이 해산하고 이주방 이주상(화랑도) 최대훈(기합도) 지한제(합기도성무관) 등 이모여 대한무도회 (大韓武道會)를 결성하였다.

 

이어서 1968년 5월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대한민국 무도사상 처음으로 모든 무도들이( 화랑도, 합기도, 비술, 유권술, 유술, 국기도, 기합도 등등...) 통합하게 되었으며 모든 주관을 이주방 형제분이 하게 되었다. 당시 대한무도회 (大韓武道會)의 회장으로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인 박종규, 대회장으로는 차지철(당시 국회의원)등 거국적인 통합을 본 화랑도의 이주방이 개최 주관하였으나 대회 후에 화랑도와 합기도의 술법이 서로 판이하게 다름으로 하나로의 무도이름이 결정되지 못하였으며 세번째의 무도단체는 무산되었다.

 그후 무도의 통합이 크게 두 갈래로 나누게 되었다.  화랑도 창시자 이주방선생 형제분의 화랑도와 이 무도의 대표단체인 대한 화랑도회를 정부에 정식 등록 시켰으며 다른 무도로는 기합도 창설자 최대훈, 성무관합기도 창설자 지한제선생의 합기도와 이 무도의 대표단체인 대한합기도협회로 나뉘게 되었다  당시 한국의 모든 다른 무술들은 이때 모두 영구히 사라지고 화랑도와 합기도 가 새롭게 정립되었다. 통합당시 다이또류야와라(대동류유술)를 고집하던 최용술 선생이 처음으로 1968년 통합 대회에 합기도로 명칭을 바꾸고 합기도의 도주로 추대되었다. 1968년 당시 한국무도로서는 화랑도, 합기도, 태권도, 유도, 검도 뿐 이었다. 

당시 합기도 도장 술법은 음양권 전수자이신 화랑도 도주의 화랑도의 술법이 많이 혼합

이로 인하여 일본의 통치하에 그들의 무도만을 수련 받은 이들의 유도와 검도와 태권도, 와 유술(다이또류 야와라)의 후신인 합기도라 할 수 있으며 전통무술 화랑도가 대한민국의 무도로 정착되었다.  일본에서는 모레이 우에시바가 창시한 아이끼도 (合氣道)라는 신 무도(新 武道)가 1960년대에 각광을 받고 있었으며 아이끼도 (合氣道)는 다이또류야와라(大東流柔術- 창시자 다께다 쇼가꾸)의 후신이며 다이또류 야와라는 주짓수(柔術-창시자 신나사부로 新羅三郞)의 후신이 된다. 처음 주짓수 (柔術)을 창시한 사람은 일본의 신나사부로 (新羅三郞)로 우리말로는 신라삼랑 이 된다.  이는 그의 선조들이 신라의 유민이었을 것이며 왜냐하면 일본은 신라라는 성씨(性氏)가 없다. 당시 신라삼랑의 선조 들은 신라의 화랑으로 일본에 귀화한 것으로 짐작되며 그들의 조국 이름을 가족이름으로 삼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로 주짓수 (柔術)는 신라 화랑들의 무술 중 유술의 술법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야와라 (柔術)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돌아와 합기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허나 한국의 합기도(合氣道) 이름자체는 우리의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일본의 주짓수(柔術)는 본 화랑도의 유술법과 흡사 한 것으로 보아 신라화랑의 음양권 무술 중에서 일부가 일본으로 유파 되었을 것이라 사료된다.  당시 고려 유민들이 스페인이나 유럽으로 이주하였을 때에도 그들은 조국의 나라이름 을 성씨로 쓴 기록이 있다. 예를 들자면 고려인의 성씨 중 "꼬레아"란 성이 있다.  

 

현재 일본에는 주짓수(柔術)나 야와라(柔術)의 도장이 일반에 없으나 미국에서는 브라질리안 주짓수((화랑도의 고투기의 일종)라는 이름으로 브라질인이 도장을 개관  하고있다. 허나 주짓수나 야와라는 하나의 술법의 이름으로서 벌써 유도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진지 오래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닌짓수(忍術)는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닌자술법(忍者術法)을 모두 터득하고 있었으며 닌짓수는 주짓수와 같이 일본 켄도의하나의 술법이름이다. 허나 뜻과 역사를 모르는 일부 미국인들이 닌짓수와 주짓수를 무도의 이름으로 잘못 알고 사용하고 있다.  1973년 이후 한국은 정책적으로 태권도를 스포츠 화하므로 올림픽경기로 책정하였으며 화랑도와 합기도는 무도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합기도의 역사가 분명할 진데 합기도의 역사를 고구려나 신라의 역사에서 이름 지어진 무도라고 더 이상 거짓역사를 만들지 말아야 될 것이다. 쥬도나 가라데도, 아이끼도와 같이 그들의 것으로 인정하고 다른 점으로 개발되기 바란다. 또한 현재의 과반수의 합기도도장 술법은 음양권 전수자이신 화랑도 도주의 화랑도의 술법이 많이 혼합되어 있으므로 일본 아이끼도(合氣道)와는 많은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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