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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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랑의 유래

 

 

 고대 신라 역사의 花郞徒(화랑도-화랑의무리)는 화랑들과

 그들의 무리를 말 함이요 .

 

 현대무도에서의 花郞道(화랑 도-화랑의길)는 옛 화랑들의 무  술이 비밀리에 전하여 오는 陰陽拳(음양권)을 전수받은 이주  방선생이 1960년 처음으로 화랑도(花郞道) 라는 무도이름을  창시하여 옛 화랑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그들의 호국정신을  무도를 통하여 후세 에 남 기고자 화랑도 라는 무도를 창시하  게 된 것이다.

  花郞徒(화랑들)은 화랑의 무리

 

 태초로부터 인간은 그들의 종족과 국가를 방위하기 위하여그  들 나름대로의 전투술을 개발하여 각 국가의 전통무술로 발  전  시켰으며 그들은 그들의 독특한 무술로서 영토 확장에 힘  을  다하였다. 한국 무술은 5000년 전부터 정립된 무술을 익  힌 강 력한 전사들의 전통적인 무술을 계승 시켰으며 옛 고  선 때에는 강병을 배출하여 만주와 저 넓은 중국의 요동에  까지 그들의 영토를 확장하였었다.  

 고조선 이후 2000여 년 전에는 한국의 영토는 신라(新羅B  C57) 고구려 (高句麗 BC37)백제(百濟BC18)의 삼국  시대를 맡게된다. 이들 또한 각 나라가 서로의 영토를 확장  하기 위하여 각기 특유의 무술을 개발하여 병사에게 전수시  켜 삼국이 대립하게 되었다.

 신라는 일찍이 화랑제도(花郞制度)를 만들어 진골(眞骨)과  성골(聖骨)로 이루어진 귀족과 황족의 자손들로 하여금 화랑  (花郞)이라 칭하고(지금의 사범)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을 랑  인(郞人)또는 랑도(郞徒)(지금의 수련생)라고 칭하였다.

이 화랑들은(花郞徒-화랑(花郞)과 랑도(郞徒)) 일인의 화랑이300에서 5000의 수련 생(郞徒)에 이르렀으며 이들은 수려한 산이나 강을 찾아 단체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단결력과 무사정신과 정서교육 즉 인간수업으로 강력한 무사(武士)의 수업을 하였는데 이들은 향가와 가무로서 그들의 정서 교육과 도덕을 함양하였으며 무술(격기술 과 무기술), 마술, 궁술 등을 익혀 용맹한 전사들을 만들어 국가에 충성하는 군에 편재시켰다.

 

 진흥왕(AD540-577)때에는 그들의 화랑제도를 현재의 군 사관 학교와 같이 국가 의 군대를 양성하는 기구로 만들고 원광법사가 세속에 있는 다섯가지(世俗五戒) 계율을 귀산 과 추항이란 두 화랑에게 전하여 화랑오계(花郞五戒)로 바꾸고 이를 화랑들의 율법 으로 삼아 용맹한 군사들을 배출하였는데 그들은 삼국을 통일하는데 과업을 완수하였고 그들이 닦은 무술은 호국 무예로서 계속 천년이란 긴 세월을 신라의 황국 이름을 지속 시켰으며 세계에 유일한 자랑스러운 천년의 가장 긴 역사를 가진 황국이 된 것이다.

 

또한 일본도 여러 번 정복하고 제압시킨 것이다. 이들의 화랑제도(花郞制度)는 고려(高麗)에까지 성행되었으나 그 당시에는 화랑들(花郞徒)의 화랑제도는 없어지고 고려조 때에는 국선들(國仙徒)의 국선제도(國仙制度) 풍월들(風月徒)의 풍월제도(風月制度)라 하여 화랑제도(花郞制度)의 변신 이 되었다. 고려에서는 이들의 한 장군 밑에 수백에서 수천의 사병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오로지 한 장군 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이러한 신라 화랑제도는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의 무사도정신(부시도-武士道)를 만들었으며 일본 또한 한 장군(쇼군將軍)밑에 많은 사병(사무라이 또는 랑인郞人)들을 두고 각 쇼군들의 영토확장을 위한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맞이하게 되었다. 신라 화랑제도의 화랑은 일본의 쇼군(將軍)이며 그들의 사병(私兵)즉 사무라이들은 료진(郞人)이라 불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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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고려의 장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즉 왕명을 거역하고 군병을 돌려 고려 왕국을 멸(滅亡)하고 나라이름을 조선(朝鮮)이라 지었으며 조선왕국의 태조가 되었고 태조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방원이 3대 태종으로 즉위하면서 그는 모든 장군들의 사병을 왕권 밑에 두고 모든 장군들의 힘을 제압하였다.

이는 사병이 많은 장군이 왕권을 위협하게되는 것을 막으려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유교를 숭상하고 문존무비(文尊武婢)의 사상이 시작되었고 즉 문(文)을숭상하고 무(武)를 천시(賤視)함으로 조선의 무력(武力)이 약화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종래에는(1910) 일본에게 나라를 빼았기는 오욕을 남기게된다.

 

조선 초기 태종이 사병제도(화랑제도)를 금지시키자 이에 불복하는 장군들은 산으로 들어가 그들의 화랑제도의 무술을 비밀리에 선택된 한 두 명의 제자에게 전통적으로 전수 시켰으며 이들은 또한 그들의 무술을 승려나 정해진 제자에게 비밀리에 전수 시켰었다. 이로 인하여 2000여 년 전 화랑들이 수련한 무술 음양권(陰陽拳)은 그 명맥을 600여 년 동안 전통적으로 비밀리에 계승시켰으며 그 최종전수자가 수암도사(修岩道師) 이였다. 그럼으로 한국 무술은 지난 수 백년 동안 일반에게는 뚜렸한 무술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1790년대 조선 22대 정조대왕 때(1776~1800) 왕의 친위대를 장용영 이라 이름하여 조직하고 그 장용영과 훈련도감의 병사를 수련 시켰던 무예도보통지 라는 유일한 책자만이 전해지고 있다.

당시에는 무술을 가르치는 일반도장이 없었으며 필요에 의하여 무과(武科)에 응시(應試)하거나 원한이나 복수를 위하여 산이나 사찰에 은거하는 기인들에게 사사 받았으며 현재와 같이 도장에서 수도철학 이나 인간수업의 대도를 수련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로 한국에는 뚜렸한 무도의 명칭이 없었던 것이다.동양의 현대무도의 명칭은 모두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그들의 전통무술을 전수 받은 이가 그들의 무술을 정립시켜 무도의 이름을 창시하고 그들의 무도를 일반에게 보급시키고자 그들의 철학과 술법을 존경받는 무도로 발전시켜 후세에 그들의 무도 이름과 명예를 남기고자 철저한 도덕의 율법과 규칙아래 목숨을 바쳐서 그들은 그들의 무도의 명예와 자랑스러운 무도의 길을 지도하고 지키고있는 것이다.

 

현대의 일부 몰지각한자들이 영업을 목적으로 현재 주인이없고 스포츠화된 기성 무도나 전통무도의 비디오 술법을 훔쳐서 만든 자신들이 만든 새 이름의 잡탕 무술을 만들고 또는 다른무도의 이름을 훔쳐서 자신의 도장에 여러가지 무도 이름을 붙이고 장사를 하고 있음으로 명예로운 무도의 전통을 파괴 시키고 있다.

이에 뜻 있는 전통 무도의 창시자들은 세계의 특허(무도업종)를 획득하여 그들의 명예스러운 무도이름을 지키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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